127. 역사의 현장에서
한 마을은 이웃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다. 농업사회는 집성촌(集性村)이어서 친족들의 삶의 터였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이익공동체여서 산업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이에 따라 주거환경도 많이 변했다. 산업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마을의 역사를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사는 고장의 어떤 선조들의 삶이 있었는 가를 알아야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 중에 아침 걷기를 계속하고있고, 요즘 나의 걷기는 산과 들을 아우르는 주택가길 약 3.5km를 매일 걷고 있다. 약간의 언덕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어서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라 생각된다. 길을 걸으면서 동리 상황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주택가이니 집의 모습에 관심 두게 되었고 마을 길 역시 관심사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을에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집 앞에 표지판을 세워서 그 집의 내력과 집에 산 사람이 한 일들을 기술해 놓아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 집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마을에 사람이 살게 된 시기와 어떤 일을 한 사람들이 살았었는지 알게 되었는데 내가 걷는 길에 이런 집이 세 채 나 있어서 무척 감명 깊었다. 한 마을이 지닌 역사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 만난 집은 낙엽이 지붕과 마당에 소복이 쌓여서 더 인상적이었다. 시켈-멜본 하우스(Sickels-Melburne House)는 18세기 초에 뉴욕 록 랜드 군(Rockland County)에 건축된 것으로 이 지역 사암(砂巖)으로 지은 주택인데 현관문과 수제 벽돌과 네덜란드 타일로 만든 벽난로 등은 오늘날도 원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가 몽고메리 멜버른 (Montgomery Melbourne)은 이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이를 사서 이곳 계곡이 보이는 현 위치에 옮겨서 재건축한 것이다. 본래 이 집 주인은 윌리엄 시켈스 (William Sickels, 1736년경에서 1768년경 거주)는 현재 뉴욕주의 록 랜드 군(Rockland County)의 판사였고 초기 소유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 이름을 시켈-멜본 하우스라고 했단다. 현재 이 가옥은 개인 소유라고 한다.
두 번째 만난 집은 엘리자베스 케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하우스인데 스탠턴은 1868년에서 1887년 사이에 이 흰색 하우스에 살면서 앤서니, 게이지(Susan B. Anthony 및 Matilda Joslyn Gage) 등과 함께 1881 년부터 1885년까지 여성 참정권(參政權)의 역사 (History of Woman Suffrage, 1881-1885)의 처음 세 권을 공동 저술한 곳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스탠턴은 앤서니와 함께 1880년 테너플라이 투표소에서 투표하려 했지만 실패했으나 1920년 헌법(1920년 8월 18일,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가 통과되어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보장됨)에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는 개헌을 끌어낸 여권운동가였다.
세 번째 만난 집은 더시슨 하우스(The Sission House)이다. 이 집은 망사르 지붕(가파른 지붕)의 집인데 제2 제국 양식(Second Empire Style, 19세기 후반 성행한 건축양식; 나폴레옹 3세 양식, 제2 제정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집인데 1867년에서 1876년 찰스 시슨(Charles G. Sisson)이 살았던 모양이다.
그는 지역 철도 노선을 사들여 운영한 자수성가한 철도회사 사장이었다. 여권운동가였던 수잔(Susan B. Anthony)의 일기에 따르면, 1870년 10월 16일, 시슨 씨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이 여권운동의 일로 워싱턴 DC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도록 32KM 떨어진 저지시티(Jersey City)까지 마차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스탠튼은 나중에 시슨의 딸에게 결혼 선물로 “여성 참정권”을 주었다고 일기에 썼다. 여성 참정권이 이루어진 때쯤 시슨의 딸이 결혼을 한 모양이다.
두 번째 집과 세 번째 집은 이웃으로 여권운동에 협력했던 것 같다. 19세기 말 교통 사정이 얼마나 좋지 못했겠는가, 이때 먼 거리를 마차로 데려다주었다는 것은 큰 호의라고 생각된다. 이런 이웃의 도움으로 미국 여성 참정권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걷기 길에서 만난 성공회교회는 고즈넉이 앉아있어서 무척 평화롭게 느꼈다. 영국 성공회 교회이며 교회명이 좋았다. 화해(atonement) 교회,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 사람과 사람의 화해, 사람과 자연의 화해, 지역과 지역의 화해 좋습니다.
이 교회는 1868년 설립되어서 위의 역사적 건물 세 집과 거의 동시대의 교회이다. 초기 이들 집에 사는 사람들도 이 교회 성도였을 것이다. 본당 목사인 스니드(Rev. David Sneed) 씨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지금은 폐철도이지만 옛날 역사(驛舍)가 아름답게 서 있다. 이역은 마을 중심에 우뚝 서 있다. 테너플라이 기차역(Tenafly Railroad Station)은 1874년에 완공되었는데 건축가 다니엘 토핑 앳우드(Daniel Topping Atwood)는 하이 빅토리아 고딕 (High Victorian Gothic) 양식(樣式) 이라고 불리는 석조 구조물로 설계해서 지은 역사이다. 이 역은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데 걸맞은 교통수단으로 이 지역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역사는 1962년 자치구가 매입하였고 통근 열차로 사명이 종료된 1966 년부터 다양한 소매 업체가 입주했었고 현재는 식당 등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이 건물은 미국 역사 문화재(National and State Registers of Historic Places and Historic American Buildings Survey)로 등재되어 있다.
이 마을은 농업사회에서 19세기 말경 산업사회 체제로 전환된 것 같다. 아직 여자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못한 시점에서 여권운동(女權運動)의 단면을 보는 것 같고 소규모의 사철(私鐵)의 모습이 보이고 당시 사람의 이동 범위가 무척 한정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건축양식이 도입되어서 시대조류가 이 지역까지 전파되었던 것 같다.
미국 동부의 가옥은 돌로 많이 건축했는데 이는 지역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시켈스-멜버른 하우스가 사암으로 지은 것도 이곳에서 많이 나는 석재를 이용한 것 같다. 인간은 자연환경에서 삶의 모습을 결정하게 된다. 자연의 일부로 살면 무궁한 발전을 할 것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2024년 11월 20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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