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단상(斷想)] 153. 오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profkim 2026. 5. 31. 15:30

오월의 여왕 덩굴 장미 Ⓒ 2026 J. K. Kim

 

 

153. 오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내가 청년 시절 러시아 민요로 알고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애절한 노랫말과 3/4박자의 서정적인 선율로 큰 사랑을 받았던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후렴)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Oh My Darling, Clementine 이미지 자료 출처: https://gemini.google.com/0c5ec8af-1521-4518-b329-32e52b34249c

  이 노래는 사실 러시아 민요가 아니라 미국 민요이다. 19세기 중엽 미국 골드러시(Gold Rush, 1840~1850년대)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배경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오월의 여왕 덩굴 장미 Ⓒ 2026 J. K. Kim

  당시 금광 노동자들(이들을 'Forty-niner'라 불렀는데, 1849년에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은 깊은 계곡에서 열악한 주거환경과 근로 조건을 견디며, 돈을 벌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난을 극복해 나갔다. 이때 한 아버지가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을 데리고 금광에 왔는데, 딸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집에서 거위를 길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거위를 몰고 가다가 깊은 계곡물에 빠졌고, 수영을 못하는 아버지는 이를 보고도 구하지 못했다는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절망 속에서 딸을 그리워하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오월의 여왕 덩굴 장미 Ⓒ 2026 J. K. Kim

  우리나라의 노랫말은 미국 원곡의 노랫말과 사뭇 다르다. 이 노래가 국내에 소개된 시기는 1919년 기미삼일운동 직후였다. 대구 출신의 박태원(朴泰遠, 1897-1921) 선생은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미국 민요의 멜로디에 우리 고유의 슬픈 정서를 담아 클레멘타인을 번안(飜案)해 소개했다. 당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와 국민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랫말을 바꾼 것이다.

오월의 여왕 덩굴 장미 Ⓒ 2026 J. K. Kim

  박태원 선생은 한국 동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곡가 박태준(朴泰俊, 1900-1986) 선생과 계성학교 선후배 사이로, 같은 시기 대구양악연구회(大邱洋樂硏究會)에서 함께 활동했다. 또한 대구제일교회(당시 명칭은 남성정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이기도 하다. 두 분은 친 형제이며, 19193·1운동의 역사적 현장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들이다. 불행하게도 박태원 선생은 폐병으로 요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늘진 곳의 이미지 Ⓒ 2026 J. K. Kim

  박태원 선생은 클레멘타인 아버지의 처지가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이 노래를 번안했다. 이 곡은 암울했던 시절 우리 민족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미국 원곡(元曲)과 한국 번안곡(飜案 曲) 사이에는 몇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다.

 

  먼저 배경과 주인공의 직업이 다르다. 원곡 가사는 광산의 계곡과 동굴이 배경이며, 클레멘타인의 아버지는 가난한 광부이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딸에게 신발조차 제대로 사줄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딸은 발에 맞지 않는 샌들을 끌고 거위를 몰고 가다 나무에 걸려 강물에 빠진 것으로 묘사된다.

May Queen 작약 Ⓒ 2026 J. K. Kim

  반면, 한국 번안곡에서는 아버지가 어부로 바뀌었고, 클레멘타인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아버지를 멀리 떠나간 것으로 각색되었다. 그러나 딸을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만큼은 원곡 못지않게 애절하다. 이 점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국민의 정서를 달래는 데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May Queen 작약 Ⓒ 2026 J. K. Kim

  다음으로 결말의 분위기가 다르다. 한국 번안곡은 3절까지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라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끊임없는 슬픔과 한()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미국 원곡에서는 매일 딸의 죽음을 애통해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새로운 애인을 만나 클레멘타인을 잊자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해야 할지, 슬픔을 딛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미국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형태다.

May Queen 작약 Ⓒ 2026 J. K. Kim

  19세기 미국 광부들은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진흙 바닥을 구르며 목숨을 걸고 금을 캤다. 영양실조와 전염병, 불의의 사고로 동료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비극을 황당한 코미디로 승화시켜 웃어넘기자라는 식의 블랙 유머(Black Humor)를 노래에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May Queen 작약 Ⓒ 2026 J. K. Kim

  반면 일제강점기에 이 노래를 들여온 한국의 음악가들은 나라 잃은 백성의 고달픔과 한을 위로하기 위해, 미국의 웃픈유머를 걷어내고 가장 눈물겹고 절절한 가족애로 완전히 재 창안 했다.

  일제강점기에 널리 불리던 이 노래는 해 질 녘에 부르면 그 애절함이 더욱 짙었다. 오늘날의 번영한 우리 나라를 힘써 지켜야 부끄럽지 않을 것이며, 우리 후손들에게는 다시는 이러한 고난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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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J. K.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