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사이에서 수모를 겪으면서 오늘의 번영을 이룬 우리나라를 바라본다. 슬픈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가 교차(交叉)한다. 오늘은 제71회 현충일이다. 이런저런 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내일 후손들의 번영을 기원하는 날인가 보다. 우리 역사는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며 또 미래를 조망하는 비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정체성도 비전도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 현충일은 1956년 6월 6일 제1회 기념식을 갖음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한국전쟁 전사자(전몰장병) 중심이었으나, 1965년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까지 모두 포함하여 추모하게 되었다. 1956년 6월 6일은 24절기 중 망종(芒種)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리 추수가 끝나고 모심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좋은 절기이다. 그래서 6월을 호국(護國)의 달로 정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우표 2010년
온 국민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하루를 보내면서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기르도록 하는 날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과 자유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선조들이 있었고 그들은 목숨을 바쳐 싸워서 얻은 오늘이기에 결코 망각해서는 아니 될 과거이다.
백철죽 Ⓒ 2026 J. K. Kim
탈북한 분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번영한 국부(國富)를 보고 놀라워한다. 북쪽에서 하루 세끼 끼니를 떼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그런데 대한민국의 선진 인프라와 질 높은 삶을 보고 놀라워하고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지옥에 비유한다.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치면서 최고의 의류와 음식 대접을 받으면서 그리고 임대주택을 배정받으면서 자신은 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전혀 없는데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독백을 한다.
백철죽 Ⓒ 2026 J. K. Kim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와 1970년대 같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고, 가난한 살림 살이를 줄여서 자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어머니가 있었고, 하루 12시간 노동을 한 근로자가 있었다. 그리고 잘살아보자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와 기업가들이 있었다. 오늘을 이룬 그 많은 분의 헌신을 잊어서도 안 된다. 공짜로 잘살게 된 나라가 아니다. 선진 들의 피와 땀이 이 땅에 배어있다. 우리가 잊으면 안 될 과거이다. 그리고 잘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
현충일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가 가져온 번영이 앞선 세대의 피와 눈물, 그리고 수많은 희생 위에 세워진 값비싼 결과임을 알고 느끼는 날이다. 즉 역사적 소명의식을 새롭게 하고 다짐하는 날이다. 거창한 구호나 애국심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번영의 세대를 기뻐하는 덩굴 장미 Ⓒ 2026 J. K. Kim
한 국가의 품격을 결정 짓는 지표는 바로 우리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 얼마 전 이란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가 돌아올 때 대통령과 각료가 마중하는 광경을 보았다. 국가를 위한 희생자에 대한 국가적 예우이다. 이런 광경은 미국의 국방력을 향상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전몰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어떤가는 우리의 국방력을 가늠하게 할 것이다.
번영의 세대를 기뻐하는 덩굴 장미 Ⓒ 2026 J. K. Kim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은 미국 수도에 세워진 한국전쟁 기념공원이다. 이 공원은 1995년 7월 27일(한국전쟁 정전협정일)에 제정 및 완공 되었다.
공원은 노간주나무 꽃(Juniper, 로뎀나무) 덤불 사이를 헤치고 전진하는 19명의 미군 장병 동상이 세워져 있다.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을 총망라한 군인들이 우의를 입고 군장을 맨 채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동상 옆에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된 긴 “거울의 벽”이 있는데 이 벽에 19인의 동상이 반사되면 총 38명으로 보이게 되고 이는 한반도를 가로지른 “38선”과 UN군이 전쟁에 참전했던 38개월의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거울의 벽 바닥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또 여기에 “우리나라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백철죽 Ⓒ 2026 J. K. Kim
이 공원에는 2022년 7월에 한국인들에게 더욱 뜻깊은 공간이 새로 마련되었다. 바로 “추모의 벽”이 건립되었는데 그동안은 참전 장병들의 숫자만 기록되어 있었으나, 새로 세워진 화강암 벽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6,634명과 한국군 카투사(KATUSA) 7,174명 등 총 43,808명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대로 하나하나 각인되었다. 미국 영토 내에 있는 미국 국립기념공원에 미군이 아닌 한국군(카투사)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는 한미 동맹의 굳건함과 조국을 위해 함께 피 흘린 영웅들을 차별 없이 예우하겠다는 미국의 보훈 정신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전물자를 미국 워싱턴의 “추모의 벽”처럼 전사자 개개인의 이름을 모두 새겨 넣은 공간이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있다. 전쟁기념관 양측 회랑에는 6·25 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 경찰, 그리고 UN군 전사자 20여 만 명의 이름이 검은 화강암 명비에 군별, 국가별, 알파벳 순으로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능소화 Ⓒ 2026 J. K. Kim
워싱턴 기념공원에 카투사 이름이 새겨지기 훨씬 전부터, 대한민국은 이곳에 미군을 포함한 모든 UN군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 기려왔다. 미국인 참전용사나 유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의 이름을 찾으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다. 현충일을 맞아서 오늘 우리를 있게 한 모든 헌신자를 기억하고 다시 그들의 헌신을 되새기고 앞으로 이 나라를 잘 지켜서 번영한 국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