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우 정 (友 情) 2
조선 후기에 이상적(李尙迪, 1804년~1865년)이란 분이 있었다. 중인 출신의 역관이었다. 중인이란 양반과 상민 사이의 중간 계급에 속했다. 조선조에서 중인 계급에는 역관(譯官), 의관(醫官), 화원(畫員), 율관(律官) 및 산관(算官) 등이 포함되었다. 이상적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역관, 그리고 시인이었다.

이상적은 1804년, 조선에서 손꼽히는 우봉 이씨(牛峰 李氏) 역관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 가문의 학문적 토대 위에서 자라났다. 23세인 1826년(순조 26년)에 사역원(司譯院)의 한학(漢學·중국어) 역과에 합격한 그는 뛰어난 언어 감각과 학문적 재능을 바탕으로 일찍이 사역원의 역관이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되었다. 이상적은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학문과 예술을 사랑했으며, 특히 추사 학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스승을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통역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나 시(詩)를 짓는 데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내서, 당대 내로라하는 사대부(士大夫)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명문가 출신인 김정희의 문하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이상적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상적과 추사 김정희가 처음 만난 때는 이상적이 20대이던 1820년대 후반에서 1830년대 초반 사이로 추정된다.

김정희는 서학(西學)과 고증학, 그리고 새로운 중국의 문물에 관해서 매우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이상적은 청나라를 왕래하는 역관이었기에, 김정희가 절실히 필요로 하던 중국의 최신 서적과 학문적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 김정희는 이상적의 뛰어난 시적 재능과 명민함을 깊이 아꼈고, 이상적은 김정희를 학문과 예술의 거장으로 존경하며 사제 관계를 이어갔다.

김정희는 젊은 시절(1809년) 아버지를 따라 연경(燕京·북경)에 다녀오며 청나라 고증학자 옹방강(翁方綱, 호 담계 覃溪, 1733~1818)과 완원(阮元, 호 운대 芸臺1764~1849) 등과 깊은 인연을 맺은 바 있었다. 이런 인연을 토대로 하여 이상적이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동지사(冬至使) 등의 사행단을 따라 청나라 연경을 왕래하게 되면서, 김정희와 청나라 유학자와의 유대를 바탕으로 청나라 지식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적은 역관으로서 공식적으로만 12차례나 중국 연경을 왕래했는데, 이때 당대 청나라의 내로라하는 문인·학자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어 청나라에서도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김정희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희생양으로 1840년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다. 김정희는 풍양 조씨 세력과 가깝다는 이유로 안동 김씨의 탄핵을 받아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동안 김정희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 많은 제자가 모두 그를 떠났다. 죄인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정치적 보복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밀려나면 곁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상적은 달랐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스승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청나라를 다녀올 때마다 귀하게 구한 서적들을 먼 제주도까지 수차례 보내주었다. 1843년에는 계복(桂馥, 호 여문 魚門, 1736~1805)의 “만학재집(晩學齋集)”을, 이듬해에는 대진(戴震, 호 동원 東原, 1724~1777)의 “경설(經說)” 등 당대 학자들이 가장 갈망하던 최신 서적들을 스승인 김정희에게 전달했다. 이 외에도 이상적은 중국에서 구한 귀한 서적과 탁본, 서화들을 스승 김정희에게 보내드렸고, 이런 자료들은 김정희의 '추사체'와 '고증학(考證學)'이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스승에 대한 이상적의 정은 살뜰했고,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직함이 있었다. 출세 지향적인 이였다면 이리하지 못했을 터, 스승 김정희는 깊이 감동하였다.
변함없는 의리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김정희는 이상적을 위해 그림 한 점을 그린다. 이 그림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세한도(歲寒圖)”이며, 발문(跋文)에 이상적에게 그의 높은 지조를 극찬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 논어 論語, 자한 子罕 편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련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지조와 의리를 상징한다. 화면 오른쪽의 늙고 꺾인 소나무가 추사 자신을, 왼쪽의 곧게 뻗은 나무들이 제자 이상적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왼쪽에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과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추사의 친필 발문(跋文)이 함께 적혀 있어 그 문학적·역사적 가치를 더해준다 |
이상적은 청나라에 갈 때 세한도를 가져가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여주고 찬문(贊文)을 받아왔는데, 이 역시 양국 문화 교류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중 한 분인 반증위(潘曾瑋)는 찬문에서 “풍진 속 세상을 개탄하다가 일찍이 어린 친구(이상적)를 알게 되었네. 높은 의리 돈독하긴 언제나 같고, 겨울에도 그 맹세는 변함이 없네”라며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절개를 칭찬했다.

고증학의 거목이며 지리학자인 장목(張穆)은 세한도의 가치를 알아보고 두루마리 겉면에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라는 붉은색 제목 글씨를 정성스럽게 써주어 작품의 격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사람의 우정이 고난을 당했을 때도 변함이 없다면 진실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상적은 모든 사람이 몰락한 스승을 떠날 때 오히려 더 가까이하며, 김정희의 학문 세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자료와 문물을 보냈다. 그 덕분에 김정희는 유배 생활 속에서도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상적의 맑고 높은 기개는 스승을 감동시켰고, 김정희는 제자의 아름다운 의리를 한겨울의 추위에서도 변함이 없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선물하였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청나라로 가져가 지식인 16인의 찬문(贊文)을 받고 장목의 제액(題額)을 받음으로써 이 작품의 가치를 드높였다. “세한도(歲寒圖)”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보가 되었고, 국제 교류의 위대한 상징이 되었다.
김정희와 이상적의 아름다운 우정은 오늘날과 같은 세태 속에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배신으로 얼룩진 인간관계가 팽배한 이때, 두 사람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맑고 아름다운 관계가 우리 사회에도 가득하기를 소망 한다.
2026년 6월 25일(목) 한국전쟁 발발 76주년 아침
Ⓒ 2026 J. 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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