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9. 자기권리 주장

profkim 2020. 3. 14. 14:31



자기권리 주장

 


 

  

지적 장애를 주축으로 하는 학습장애인과 뇌성마비 등 발달지체인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학부모나 교사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의사나 권리를 표현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발달지체인의 자기권리주장대회를 가진 일이 있었다. 전국에서 1,900여 명이 모여 22명의 권리주장자의 의견을 듣고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때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직업분과에서 제일 발표를 잘한 사람이 1등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 사람이 일하고 있는 소기업을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장은 너무 화가 나서 나에게 격렬한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그 사람이 지적장애인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은 기독교계통의 기관으로 지적장애인들이 매일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제외한 모든 순서를 이들이 맡아하고, 소속원이 발표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말할 수 있고 권리도 주장하고 사람도 사귀고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전문가들은 이런 점에 대해 매우 무지했다는 것을 뉘우치게 되었다.


맹인, 농아인, 지체부자유 등은 각자 자신의 권리를 강도 높게 주장하여 우리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의자차를 타고 간다든지 흰 지팡이를 집고 가면 누구나 보고 알고 장애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에게는 이런 외형적 증상이 없고 그렇다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지적장애인을   위시한 발달지체인은 사회적 대책에서 항상 소외되어 왔다.


이런 이유에서 지적장애, 뇌성마비, 학습장애 부모회가 사회운동을 벌리게 되었고 이런 부모운동에 의해서 사회대책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부모운동은 매우 강력하여 부모참여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며 제도의 확립, 계몽사업 모든 것을 부모가 해 왔다. 우리 전문가는 부모가 겪고 있는 고통의 십분의 일도 이해 할 수 없으며 그래서 전문가는 사회운동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발달지체인의 고민이나 고통을 부모들이 어떻게 다 이해하겠는가! 그들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본인이다. 발달지체인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다시 갈 곳이 없어진다.


스웨덴에서 30여 년 전 이들이 뭉쳐서 결사를 하고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 운동은 세계적 운동으로 번져서 90여 개국의 회원을 가진 국제기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의 권리주장을 위해서 몇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


첫째, 발달지체인의 교육 가능성에 대해 낮은 기대는 금물이다. 지나친 높은 기대도 문제지만 낮은 기대도 이들의 모든 것을 뺏아가고 만다. 적정한 기대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오래KBS 일요스페셜에서 시베리아에서 온 독수리를 돕기 위해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 먹이를 얻어먹은 독수리는 닷새나 굶으면서도 먹이 사냥을 않고 또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먹이를 주는 갸륵한 선행이 독수리의 야성을 말살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표현하고, 주장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이들의 야성을 기르고 표출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둘째, 미국의 자기권리 주장 단체명이 People First이다. 나는 이것을 더불어 사는 국민으로 번역해서 썼지만 이들은 자신을 지적장애나 발달지체로서가 아니라 어엿한 국민으로 먼저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다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고 내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support)해 달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중요한 운동은 이름 찾기 운동이다.


교육은 먼저 인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학습을 시작되어야 하고 장애인이란 개념에서가 아니고 인간 또는 국민이라는 기본 틀에서 교육대상자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곁에 어떤 이든 고통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병리 때문에 생기는 것이어서 사회개혁이 요청되는 것이다.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장애사회라는 말이 된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병리 현상임을 인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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