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제일교회(통합, 담임목사 김영호,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헐티로 218-2 우38308<송서리>, 054-372-8030)는 영남지방 복음전래 초기에 세워진 교회로 올해 12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풍각제일교회 설립은 대구제일교회가 세워진 2년 뒤인 1899년 3월 아담스(Rev. James E. Adams) 선교사에게서 김경수(金敬守) 성도가 복음을 받음으로 설립된 청도의 모교회이다. 경북 청도군 화양의 김경수씨가 예수를 믿고 청도군 이서면 가금동에서 전도하여 조병종, 김양석, 홍종찬씨 가정이 믿음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김양석씨의 초당(草堂)을 예배장소로 하여 송서교회(송서동)가 성립되고 2년이 경과하여 선교사 브루언(Rev. Henry M. Bruen)의 지도를 받은 교회이다. 송서교회에서 교회 명칭을 풍각제일교회로 1976년 3월 19일 변경하였다.
영남지방의 선교는 미국 북장로교가 파송한 아담스(Rev. James E. Adams, 대구사역 기간 1896-1923, 한국명 안의와 安義渦) 선교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을 설립한 존슨(Dr. Woodbridge Odlin Johnson, 대구사역 기간 1898-1913, 한국명 차인차) 선교사와 대구 선교본부의 일원으로 참여한 브루언(Rev. Henry M. Bruen, 대구사역 기간 1899-1944, 한국명 부해리) 선교사들이다. 브루언 선교사 부인 부마태(Martha Scott Bruen, 대구사역기간; 1902-1930, 한국명; 부마태, 傅馬太) 선교사는 신명여자학교를 세운 사람이다. 이들 선교사 삼총사와 풍각제일교회는 많은 관련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안의와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김경수 성도(후에 교회 직함은 확인이 되지 않아서 더 고증이 필요하다.)의 주도로 1901년 청도군 송서동 신 시장에 2칸 초옥(草屋)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다가 3개월 후에 청도군 각북면 명대면에 초가(草家) 2칸을 새로 건축하여 여기서 4년간 예배드렸다. 최초로 예배를 드린 처소는 아직도 건물이 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형되었다. 교회는 이를 매입하였고 고증을 통하여 원형을 복원하려하고 있다. 다음 그림은 첫 예배처소의 원형복원가상도이다.
당시 사정은 어려웠다. 도로사정이 나쁘고, 교통수단도 대부분은 걸어서 다니는 시절이다. 성도들이 교회 오려면 수십 리를 걸어야했고 예배 한 번 드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자연 교회 분립(分立)이 생겼고 또 그곳에 새로운 예배처소가 생기고 성도가 생겨서 자연 전도가 되는 형국이었다. 풍각제일교회에서 1905년에 청도군 각북면 오산동에 오산교회가 분립되어 설립되었고 1906년 청도군 화양읍에 서상교회(현 화양읍교회)가 분립하여 설립되었다.
교회는 1906년 9월에 청도군 풍각면 송서동 중앙에 초가(草家) 4칸을 매입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한편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설립하여 교육기회가 없던 이 지역에 신교육을 수행하는 일도 하였다.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의 선교방법은 길거리 전도, 사랑방 전도, 시장터 전도를 주로 하였고, 선교매체로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일신학교는 선교사들의 이런 방침에 따라서 세워지고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이때 상황을 풍각제일교회120년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신(日新)학교 설립 1906년에 학당(學堂)을 설립하여 최명신 씨의 교수 하에 생도 약간 인이 수업하다가 1909년 이르러 교육령에 의하여 학교급 주인가를 득하여 4∼5년 간 교육하다가 경비 곤란하여 폐지되었으며, 1920년에 이르러서는 교육기관이 없으므로 안타깝게 여겨 학교를 기쁘게 설립하여 교장 김만성 씨와 교사 홍재범 씨 교수 하에 1921년 봄에, 최성찬과 조위석 두 사람이 제1회 졸업하여 현재 대구계성학교 수업 중이고, 지금 현재 본 교회의 학교에는 남생도 27인, 여생도 10인이 재학 중이다. 홍재범, 장치견, 김경일 제씨(諸氏)의 권서로 시무한 년이 유하 고, 김만성 씨는 대구 계성학교 제1회의 졸업증을 수(受)하(였)음에 1922년 춘(봄)에 장로 장립을 수(受)한 인하야 평양신학교에 입학 하(였)으며(풍각제일교회120년사. pp. 168, 169)
선교 초창기는 우리나라 개화기이며 신문물이 들어오는 때이며 신교육기관은 사회계층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선교사들의 지도아래 각 교회는 신교육기관을 설립했으나 재정적 어려움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런 인재양성을 통해서 그 기반을 튼튼히 해 나갔다고 보아야한다.
풍각제일교회에서 분립(分立)하여 세워진 교회들은 10개교회이며 후에 인도네시아 발리에 세운 풍각제일교회가 있어서 모두 11개 교회가 된다. 교회가 청도지역에서도 교회 분립을 해왔지만 외국에 교회를 세운 일은 12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로서 소명을 다한 일이라 생각된다. 풍각제일교회에서 분립(分立)하여 세워진 교회들은 다음과 같다.
1. 청도군 각북면 오산동에 오산교회 분립 (1905년)
2. 청도 화양읍에 서상교회(현 화양읍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06년)
3. 청도군 삼신동에 삼신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08년 10월 5일)
4. 청도군 이서면 칠곡동에 칠곡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09년)
교회가 흥왕하여 조선식으로 초가 8칸을 신축하다.
5. 청도군 풍각면 차산동에 차산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18년 3월 1일)
6. 청도군 이서면 수야동에 수야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21년)
7. 청도군 각남면 옥산동에 대산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55년 6월 10일)
8.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에 풍각교회를 분리 설립하다. (1955년 8월)
9. 차산동 차산교회를 재분리 설립하다. (1959년 4월 8일)
10. 남선교회 창립하다. (1986년 12월 14일)
11. 발리 풍각제일교회 개척 입당하다. (2006년 5월 9일)
* 발리풍각제일교회 새 성전 헌당은 2014년 9월 25일이다.
풍각제일교회 1960년대에는 성령운동이 크게 일어나서 교회가 너무 뜨거웠고 새벽기도회며 집회 때 마다 너무 열정적인 찬송과 기도로 이웃들의 소음에 대한 항의가 많았다고 한다. 그 때 교회는 강대 밑에 지하기도실을 만들어서 불붙는 영혼들로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땅굴을 파서 지하 기도처를 만들었다는 것은 당시 성도들이 얼마나 열정적이 이었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청도지방은 복음이 비교적 빨리 전파된 곳이다. 이는 미국 북장로교 최초의 선교사로 1891년 부산에 도착한 베어드(Rev. W. M. Baird, 영남지방 사역기간 1891년∼1896년, 한국명; 배위량 裵褘良) 선교사가 1893년 4월 17일부터 5월 20일까지 부산을 떠나서 밀양을 거처 청도에서 팔조령을 넘어서 대구에 들어감으로 청도지방과 대구에 복음이 전파되는 게기가 되었다. 이때 베어드 선교사의 전도여정을 보면 부산→밀양→청도→대구→상주→안동→의성→영천→경주→울산→동래를 경유하였으며 길은 560km(400miles)이었고 34일간의 강행군을 했던 것 같다.
베어드 선교사의 1893년 영납북부지방 선교여행이 이 지방 복음전래의 시초가 되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베어드 선교사는 대구에 선교기지 설치를 결심하게 되었고 교회의 허락을 받아 대구 남성로의 현 대구제일교회 역사관 자리에 터를 구입하여 기지를 세웠고 자신이 1896년 4월 가족을 데리고 대구로 이사하게 된다. 그러나 베어드 선교사는 그해 10월 서울 선교본부 교육고문으로 떠나게 되고 그의 처남인 아담스 (Rev. James E. Adams, 안의와 安義渦) 선교사가 뒤를 이었다. 풍각제일교회는 이 아담스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김경수 성도가 설립한 것이다.
풍각제일교회를 위시한 청도의 교회들은 베어드 선교사의 청도지방 선교의 날(팔조령을 넘은 날)인 1893년 4월 22일을 기념하여 청도지방 67개 교회가 힘을 합쳐서 팔조령에 “청도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비”를
팔조령에 세워진 청도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비
이 기념비 아래에는 다음가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이 기념비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공식 선교사였던 배위량(Rev. William M. Baird) 목사가 영남지역 선교지 책임자로 부임하여 사역하던 중, 주후 1893년 4월 17일(월) 부산을 출발하여 4월 22일(토) 오전 9시경 이곳 청도 땅에 도착, 복음을 전한 사실을 기념하여 청도군 지역(67처) 전 교회가 뜻을 모아 그가 지나간 길목에 이 비를 세우다.” 베어드의 1893년 4월 22일 일기에 “우리가 길을 떠나 팔조령이라는 높은 산언덕을 넘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 p. 68)
풍각제일교회는 초기 청도기독교역사자료를 많이 보관하고 있다. 풍각제일교회120주년 기념관 2층 “청도 기독교 역사관”에 초기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성경책과 도서, 그리고 오래된 종(鐘)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교회120주년기념관에 한 방을 이용하여 전시하고 있으나 협소한 것 같다. 청도지방은 영남지방의 선교를 일찍 받은 곳으로 여러 가지 사료도 많은 점으로 보아 한국기독교역사연구를 위해서도 박물관이 설립되어 잘 보관해야 할 것 같다.
풍각제일교회 “청도 기독교 역사관”에 전시된 교회가 사용했던 강대용 초인종
교회 입구에는 종각이 서있고 여기 달려있는 종은 1910년 제작된 것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공출(供出)을 피하기 위해서 3년간이나 우물에 넣어두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종 보존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 지며, 우리나라 기독교교회에서 사용된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측한다.
김영호 담임목사는 풍각제일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비전을 120년사 13장에서 “뉴 스타트(new start) 축복의 마중물”을 기술함으로 충분히 갈 길을 밝혔다고 본다. 장 서두에서 “김영호 목사는 청도의 모 교회로서 풍각제일교회가 이제 청도를 넘어 열방을 바라보고 축복의 마중물로 새롭게 출발하자고 역설했다. 뉴 스타트! 열방을 살리는 축복의 마중물, 풍각제일교회!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영호 목사는 풍각제일교회가 축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위해 교회가 믿음으로 바로 서고 믿음만큼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영호 목사는 앞으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다음 다섯 가지로 설명하다.
첫째, 풍각제일교회는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교회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둘째, 풍각제일교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섬기는 교회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셋째, 풍각제일교회는 신 중년들을 은퇴(re-tire) 후 남은 인생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가도록 돕는 교회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넨째, 풍각제일교회는 지치고 상한 도시인들을 위한 힐링 센터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다섯째, 풍각제일교회는 북한 선교를 위한 선교적 교회로 세워가고자 합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김영호. 2020. 미션아카데미)는 잘 정리된 교회사이다. 보기드문 일인데 이 책은 김영호 담임목사가 집필을 하였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일관성을 유지 할 수 있었고 교회사에서 다루어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역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근래에 보기 드문 교회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제1부와 제2부로 구성되었고 제1부는 교회명이 송서교회 이였을 때 역사를 제1장부터 제11장까지 다루었고, 제2부에서는 교회명이 풍각제일교회로 개명된 후의 역사 즉 1976년 이후의 역사를 제12장∼제14장으로 기술하였고 그 뒤에 부록이 있다. 책은 총790쪽으로 구성되어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를 출판하면서 김영호 목사는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사람 세분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풍각제일교회 120년사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분이 세 분 있습니다. 아담스 선교사님에게 이 지방에서 최초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설립자 김경수 성도님입니다.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셨던 그분의 열정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듣고 자기의 집을 예배처소로 기꺼이 내어놓고 대구·경북지역에서 첫 예배당을 건축할 때 자기 재산을 내어놓은 김양석 영수님, 그분의 헌신과 충성을 오늘 우리가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린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헌신과 충성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긴 그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그 무게에 힘겨웠지만, 믿음으로 감당하기를 원하셨던 초대 장로님이신 최재교 장로님입니다.
풍각제일교회는 지난 3년간 이 세 분의 후손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최재교 장로님 후손을 찾게 되었습니다. 최장로님의 후손인 박종남 권사님과 매주 교제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김경수 성도님과 김양석 영수님 후손도 빨리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 서문 중에서)
풍각제일교회120년사 출판의 의의(意義)를 손산문 목사(통합, 영천자천교회)는 이 저서가 가지고 있는 값어치를 유감없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손 목사의 글을 요약하려하다가 오히려 그 설명의 진의를 흐릴 것 같아, 그 전문을 소개하기로 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의 교회사적 의의
먼저 120년사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2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간단치 않은 일을 해낸 풍각제일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시라 믿으며, 120년사 발간이 갖는 의의를 대략 3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풍각제일교회120년사>는 대구‧경북 지역 개교회사로서는 첫 번째 120년사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 전체로서도 남대문교회, 정동제일교회 등 몇 교회가 되지 않는 귀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120년사는 쓰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쓰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와 함께 하신 120년이란 역사적 시간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그 교회가 120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집필과 편찬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구‧경북 지역 교회 가운데 현 시점에서 120년사를 쓸 수 있는 역사 있는 교회가 7-8개 교회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느 교회도 이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풍각제일교회120년사>는 우리 교회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김영호 담임목사님의 집필 의지와 장로님들의 정성어린 협조 그리고 전 교인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 결과물이란 점에서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두 번째 의의는 현재 시무하고 있는 담임목사님이 상당한 전문성을 갖고 직접 집필했다는 것입니다. 선교학자인 김영호 목사님은 교회사학자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전문성은 <풍각제일교회120년사>를 기존에 발간된 여타의 개교회사와 차별성을 갖게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개교회사들은 대부분 비슷한 구성과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한국 교회사, 지역 교회사, 개 교회사를 연대기적으로 구분하여 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풍각제일교회120년사>는 우선적으로 본 교회 역사를 중심으로 하되 지역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를 상호 교차적으로 관련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역교회사를 기술하는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 중앙만이 중심이 아니라 지역이 또 다른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시사와 거시사 그리고 선교사관과 수용사관의 조화로운 분석과 배치가 있어야 가능한 작업으로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객관적 사료(기록된 역사)에 충실하였다는 것에서도 증명이 되는데 사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에 불과합니다. <풍각제일교회120년사>는 바로 이런 전문성으로 인해 학술적 가치를 갖는 제대로 된 개교회사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의의는 교회 교인들도 누구나 쉽게 읽어 볼 수 있는 대중적 가치를 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은 특히 2부에 나타나는데 풍각제일교회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딱딱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시무했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목회자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 목회적 에피소드, 인상 깊었던 교인들의 신앙 이야기 등등이 담겨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 지난 역사를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재미있게 들려주는 storytelling(이야기하기)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개교회사 책은 교인들이 잘 보지 않습니다. 좋은 개교회사는 우선적으로 우리 교회 교인들이 보고 싶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도 <풍각제일교회120년사>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렇게 학술적, 대중적 가치를 겸하고 있는 <풍각제일교회120년사>가 앞으로 한국 교회와 지역 교회를 위해 더욱 의미 있게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발간 의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호 목사 위임식과 풍각제일교회120년사 출판 감사예배가 2020년 7월 5일 오후 3시에 풍각제일교회당에서 열렸다.
풍각제일교회는 영남지방 선교 초기에 세워진 교회이다. 청도지방의 모교회로서 그 위상이 높으며 소명도 크다. 김영호 담임목사가 지향하는 “열방을 향한 축복의 마중물” 역할을 잘 수행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늘은 120년 교회사 출판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예배를 드렸다.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 속에 비전이 들어있다.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교회는 비전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역사는 소중한 것이다.
풍각제일교회에서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담임목사와 당회원이 그 당위성을 인지하고 정리를 한 만큼 성도들의 마음에 담겨지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서 풍각제일교회가 나아갈 길을 확실히 했으면 한다.
나는 19세기 말 영남지방에 복음이 전래되고 새로운 문물이 들어옴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며 앞으로 이 땅에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편만(遍滿)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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