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 역사 인식

profkim 2020. 3. 13. 14:00



역사 인식

 


 

  

우리나라의 개화기에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로제타 셔우드 홀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녀는 1890년에 한국에 오셔서 맹인 소녀에게 점자로 교육을 시키는 일과 한국여성을 진료하신 분으로 한국 의료계, 교육계 및 기독교 역사에 크게 공헌하신 분이다.


나는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의 전기인 With Stethoscope in Asia : Korea를 접하게 되면서 홀여사의 손녀인 필리스 킹과 연결할 수가 있었다. 필리스는 로제타 홀 여사의 손녀이며, 셔우드 홀의 딸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태어난 첫 외국인이었으며 미국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하신 분이다. 필리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에서 소녀기를 보낸 분이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캐나다인이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교육받았다.


필리스의 아버지 셔우드는 자신의 선교사역과 어머니 로제타 홀의 선교사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책으로 간행하였을 뿐 아니라 감리교 본부에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보내 지금도 자료가 보관되고 있다.


필리스는 나에게 많은 자료를 넘겨주었는데 그 자료들이 100년 전 것부터 70년 전 것까지 두루 섞여 있었다. 나는 이들 자료를 대하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이 분들은 기록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하고 꼭 기록이 남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진과 함께 짤막한 설명을 덧붙여 보관하고 있었다. 그들은 찰라 하나 하나가 역사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았으며 실제로 그런 자료가 없었다면 그들이 한 일이 오늘에 전해질 리도 없다. 내가 한국 특수교육 백 년사 편찬위원장으로 한국특수교육 백 년사를 저술할 때 필리스가 나에게 건네 준 자료를 많이 인용하였는데 이런 자료가 없었다면 로제타 홀의 행적이 한국특수교육사에 비교적 소상히 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초기에 많은 선교사가 특수교육을 한 기록이 있고 한국인 중에서도 여러 분이 특수교육기관을 운영한 기록이 있으나 그것을 증명하고 내용을 설명할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니 그 역사를 누가 알 수 있으며, 후세에 그것을 어떻게 전하겠는가?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인식은 중요한 것이며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보관하지 않으면 후세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교육도 매일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것을 정리하고 보관하여 앞으로 다가오는 일들을 위해 귀감을 삼을 자료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특수교육의 역사를 사진자료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하여 여러 기관에 자료요청을 해 보았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가 될만한 자료를 보내 준 곳이 것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평소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교육은 개인의 역사, 가정의 역사, 지역사회역사, 기관의 역사, 국가의 역사가 잘 보존되도록 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조그만 자료라도 모으고 정리하여 보관하고 그것이 쓰여질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둘째, 필리스가 자료를 나에게 보내주면서 자료는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곁들였다. 잘 드는 칼이 쓰여지지 않고 장농 속에 보관되어 있다면 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산물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땅 속에 묻혀 있으면 그것은 역사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성은 그것이 발굴되고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의 손에 맡겨졌을 때 의미가 있다. 필리스는 그런 점에서 주인을 제대로 찾아준 셈이 된다.


우리의 과거 역사에서 보면 많은 자료가 주인을 못 찾아 소멸되고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수 년 전 제주도에 교육박물관이 세워졌다. 우리의 전통가옥이 점차 사라지고 아파트라고 하는 새로운 주택 양식이 보편화되면서 소위 새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이사가는 사람은 헌 것, 옛 것은 다 버리는 경향이어서 이때 소중히 보관되어야 할 역사 자료가 상실될 것을 예상한 교육감이 늦기 전에 교육박물관을 세워 이런 자료를 모아 보관해야겠다는 역사 인식으로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옛날 통신표, 교과서, 학습 도구, 교복, 교모, 뺏지 등등 수없이 많은 자료를 모았다. 역사는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역사인식이 없는 사람은 자료의 소중함도 모른다. 역사인식은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하고 지난 역사는 오늘의 토대이며 삶의 자산이다.

오늘 우리나라에 필요한 자료를 외국에 가서 찾는 예가 많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부족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의 중요성, 역사의 의미를 교육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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