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상(斷 想) 123

[단상(斷想)] 63. 안식(安息)으로 초대(招待)

63. 안식(安息)으로 초대(招待)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이런 초대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행운아(幸運兒)일 것이다. 세상에 무거운 짐과 수고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 안식을 갈구(渴求)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안식은 어디서 올까? 하늘나라에는 참된 안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참된 안식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놀라운 초대이다. 이런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미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단 상(斷 想) 2022.09.08

[단상(斷想)] 62. 종암초등학교 백년사를 받고

62. 종암초등학교 백년사를 받고 며칠 전 서울 종암초등학교 100년사(종암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꿈꾼다.)를 받고 7, 80년 전의 일들이 아련히 스쳐 갔다. 참으로 오래전 일들이다. 일본강점기 민족의 수모, 광복의 기쁨, 한국전쟁이란 민족상잔(民族相殘)과 고난의 행군, 5, 60년대의 가난을 이기려는 민족적 몸부림, 민주화의 열망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희생, 산업화과정에서 12시간씩 일한 근로자들, 허리띠 질끈 매고 가난 속에서도 자녀교육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들의 열망, 고속도로가 놓이고 제철소를 만들어 산업화의 초석을 놓은 일들, 오늘은 정보사회인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 일들이 이 수십 년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나라는 삼류국가에서 일류국가가 되었고, 후진국에..

단 상(斷 想) 2022.08.25

[단상(斷想)] 61. 오늘은 나누고 섬기기 좋은 날

[오늘을 사는 지혜 3] 61. 오늘은 나누고 섬기기 좋은 날 고난주간 화요일 저녁때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깨어 있어서 재림을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간곡(懇曲)히 이르시고 이어서 세 가지 알레고리를 주셨다.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매일 성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매일 충성스럽게 자기를 개발하라는 메시지, 그리고 세 번째 메시지를 통해서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하신다. 이 세 가지 가르치심은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라고 하시는 메시지이다. 혼인 잔치 비유에서 “신랑이 오는 때”,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오는 때”, 최후의 심판에서 “심판 날” 이 모두는 종말을 의미한다. 끝장이 나는 날이다. 그러나 이날은 오늘의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단 상(斷 想) 2022.08.17

[단상(斷想)] 60. 오늘은 재능을 계발하는 날

[오늘을 사는 지혜 2] 60. 오늘은 재능을 계발하는 날 오늘에 관한 두 번째 알레고리는 달란트 비유이다.(마25:14-30)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충성스러운 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알레고리라 보인다. 주인이 종 3인에게 각각 금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길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종들의 섬김 결과를 점검하는 비유이다. 첫째 종의 능력에 따라 맡긴 달란트가 다르다. 사람에 따라서 그 능력에 부응하게 맡긴 것이다. 둘째 종들의 충성스러운 섬김으로 맡긴 것을 증식시킨다는 내용이다. 달란트(talent, 탤런트)는 이스라엘의 화폐나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 중 하나이다. 무게를 잴 때 달란트는 34kg이다. 금 1달란트는 꽤 값어치 있는 양이 될 것이다. 화폐로는 일용노동자의 12,..

단 상(斷 想) 2022.08.12

[단상(斷想)] 59. 오늘 할 일은 오늘

[오늘을 사는 지혜 1] 59. 오늘 할 일은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난주간 화요일 낮에 성전청결을 하셨고 그 저녁 시간에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시간을 가지신다. 이 훈련 가운데는 오늘을 성공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세 가지 알레고리를 들어 말씀하셨다. 이 내용의 참뜻이 무엇일까? “단상 57 오늘”에서 오늘의 의미를 삺여보았고 예수님은 오늘을 살라는 강화를 여러 장면에서 말씀하셨다. 감람산 강화에서는 현재와 심판 사이에서 해야 할 일을 제자들에게 이르신다. 예수님의 제자는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이시다. 화요일 저녁 감람산 강화는 종말과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신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마지막 심판 이 세 가지 알레고리는 종말을 사는 사람..

단 상(斷 想) 2022.08.04

[시(詩)] 86. 목백일홍의 드림

86. 목백일홍의 드림 재를 넘는 구불구불한 길 목백일홍 활짝 웃는 얼굴 그의 손짓에 발걸음을 멈춘다. 늦잠에서 깨어난 목백일홍(木百日紅)은 이제 청순(淸純)한 얼굴로 칠월을 노래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광하는 목백일홍 활활 타오르는 정열 젊음을 노래한다. 산야가 단조로울 때 분홍 꽃 활짝 피면 생동(生動)하는 힘을 숲의 활기를 더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재를 넘는 이들에게 쉼을 평안을 기쁨을 주겠다는 꿈을 꾼다. 2022년 7월 30일(토) Ⓒ 2022 J. K. Kim . [작시(作詩) 노트] 7월은 목백일홍(木百日紅)이 꽃 피우기 시작하는 때이다. 국도로 산을 넘는다. 구불구불한 길가 짙은 숲 사이에 찬란하게 피어난 목백일홍을 만났다. 선명한 색채(色彩)며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은 7월에만 볼 수..

단 상(斷 想) 2022.08.02

[단상(斷想)] 58. 떠 남

58. 떠 남 새벽에 비가 내렸다. 올해 장마철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으나 오늘 새벽에 내린 비는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어 날씨도 무척 시원해졌다. 아침 일찍이 서둘러서 창녕에 갈 준비를 하였다. 수일 전 창녕에 계신 지인(知人; Y 교장)으로부터 8월 초에 서울로 이사를 하시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어쩌나 하든 차에 아무래도 떠나시기 전에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서 점점 늙어가는 세대가 하나둘 줄어들고 이런저런 이유로 만날 수 없게 되어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창녕에 있던 더케이서드에이지(silver town)에 내가 6년을 사는 동안 많은 훌륭한 분들을 만났고 Y 교장은 그중의 한 분이다. 다른 분들은 다 떠나서 지금은 만날 수 없다. Y 교장이..

단 상(斷 想) 2022.07.23

[단상(斷想)] 57. 오 늘(today)

[단상(斷想)] 57. 오 늘(today) 삶의 여정(旅程)에서 오늘을 수없이 만나고 오늘의 연속으로 살아간다. 이 단상을 쓰면서 제목을 종말(終末)이라 하려 했다.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접었다. 그리고 오늘(today)이라는 제목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 나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이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일 년이 되고, 한평생이 된다. 그 오늘은 나의 한평생에서 어떤 가치를 지닐까? 어저께, 오늘과 내일은 과거, 현재와 미래이다. 어저께는 지나갔으니 내 날이 아니다.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역시 내 날이 아니다. 현재, 오늘만이 내 날이고 실존적 자기를 실현하는 날이다. 내가 사는 것은 바로 오늘이고 오늘이 지나가면 내 전체 삶 가운데 하루, 오늘은 영원히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단 상(斷 想) 2022.07.16

[단상(斷想)] 56. 선농단(先農壇) 방문기

56. 선농단(先農壇) 방문기 장맛비가 며칠 계속되었다. 궂은 날씨에 일정을 변경할 수 없어서 서울 제기동(祭基洞) 선농단(先農壇)을 우중(雨中)에 찾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가서 갈비탕집에서 점심을 들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서울 선농단에 도착했다. 이곳은 너무 많이 변해서 옛 이미지를 가진 나에게 이방(異邦)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농단 옛터의 북쪽 끝에 선농단 역사문화관 건물이 있어서 조그만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선농단이 조성되어있으나 대부분 지역은 주택가로 변해있었다. 1940년대 후반에는 이 자리에 일제(日帝)에 의해 세워진 경성여자사범학교가 있다가 그 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거의 고급주택가로 변해있었다. ..

단 상(斷 想) 2022.07.03

[단상(斷想)] 55. 길 (道)

[단상(斷想)] 55. 길 (道) 초원(草原)에 길(道 the way)이 있다. 이 길은 동물들이 다녀서 만들어진 길이다. 무리 지어 반복적으로 다니면 길이 난다. 길을 아는 동물은 무리의 대장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경륜이 싸여야 길을 알게 되고 무리를 이끌게 된다. 그래서 이 지도자는 무리의 생명을 책임지게 된다. 동물에게 길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동물이 이동하는 중요한 이유는 먹이와 물이다. 그러니 이 길은 생명선과 같다. 잘못 길을 인도하면 무리 전체가 죽음을 맡게도 될 것이다. 길은 동물에게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누우 수십만 마리를 이끄는 대장은 그 책임이 막중할 것이다. 그들은 강(江)도 건너야 한다. 누우 대장은 건너기 가장 쉬운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식자들도 그곳을 알고 ..

단 상(斷 想) 2022.06.18